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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작성자 : 김무연 원장 작성일 : 2014.11.19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오랫동안 우리 곁을 지키던 가수 신해철 씨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렸을 때 되지 않는 목소리로 따라 부르던 현식이 형이 갑자기 떠났을 때 느끼던 충격과는 또 다른 차원으로 그의 죽음이 안타까웠던 것은 유명 연예인임에도 불구하고 친근한 이웃처럼 느껴지던 그의 묘한 매력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헤어스타일부터 코스프레 취향까지  별별 이야기를 다 스스럼없이 밝히며 비호감이길 자처하면서도 늘 우리 곁에 있었던 뒷 자리에 앉아 신경 쓰이게 하는 한 반 친구 같았던 그의 존재감 때문일 겁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 흥분하는 사람도 애통해 하는 사람들도 많았고 지금은 감정 보다는 "그날의 진실"에 주목하며 결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종합적인 부검 결과 보고서가 곧 발표될 예정이며 의사협회 자문도 거친다고 하고 수술을 한 의사는 본인이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지겠다고 하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진실이 밝혀질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진실보다는.. 진실에 가까운 의혹만 밝혀질 것 같고 시민으로서 의사로서 걱정스러운 마음도 많이 듭니다.

아시다시피 한 명의 수술 잘 하는 의사가 만들어지기까지 정말 본인의 피땀 흘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다들 대학 가서도 공부를 열심히 하지만 저희가 의대생 시절에 7시까지 등교해 아침 시험을 치르고 종일 앉아서 수업 받고 저녁 먹고 공부하다가 10시에 도서관 문닫을 때 우르르 나와 집에 가던 모습을 다른 전공 학생들이 이해하기는 어려웠습니다. 물론 그렇게 죽어라 공부만 한 것은 아니고 그 와중에도 나름 낭만도 있고 놀기도 했지만 6년 간 다른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고3 비슷하게 지내는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졸업을 하고 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 수련을 받을 때는 다른 어떤 직장인들이 겪지 못하는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으며 노동법 외곽에서 혼자 울고 지내야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 명의 의사가 만들어지고 나서도 더 많은 실제적 수련인 환자를 보는 임상 경험을 쌓아야 하고 그러면서 쓸만한 의사가 되어 갑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외과의사가 자기가 수술한 환자가 목숨을 잃도록 터무니없이 방치하거나 진찰도 제대로 안하고 괜찮다고 퇴원시키는 일은 없습니다. 아니 상상하기 어렵습니다그래서 신해철의 팬이기도 했고 S 모 병원 강모 원장도 조금 이해하는 입장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고 왜 그랬을까 감히 한번 추측을 해보고자 합니다. 신해철 씨는 6년 전에 위밴드 수술을 받은 뒤 장 협착이 생겨서 몇 년 전에 복강경으로 협착 제거수술을 한번 받았음에도 배가 계속 뒤틀리고 아파 견디기 힘들게 되자 이번에 아예 위밴드 제거를 결심하신 것 같습니다.

 

위밴드는 실리콘 밴드로 위의 중간을 허리 띠 매듯 졸라매서 고도비만 환자가 밥을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불러 먹을 수 없게 만드는 수술입니다. 복강경은 배 안에 작은 구멍을 몇 개 뚫어서 그 구멍으로 CO2 가스를 불어넣어 풍선처럼 부풀린 뒤 내시경을 집어넣어 배 속의 장기를 수술하는 방법으로 배를 둘러싼 근육에 손상이 적어서 통증도 적고 일상으로 회복도 금방 할 수 있게 하는 수술 방법입니다. 위밴드도 복강경을 이용해 시술하며 수술 자체는 비교적 간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몸 속에 어떤 처치가 이뤄지면 우리 몸이 자연스럽게 세균도 몰아내고 상처도 아물게 하려는 반응이 나타나는데 장기가 복잡하게 얽힌 배속에서 그런 반응이 나타나면 장과 배 안쪽, 배와 가슴을 나누는 횡경막, 간 등 이것저것이 서로 달라붙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게 장협착이지요. 협착이 일어나면 장이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으니 뭘 먹고 나면 배가 뒤틀리고 아프게 되고 그럴 때는 협착을 풀어주는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위밴드가 장협착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판단되었다면 제거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위밴드 제거와 장협착 수술을 복강경을 이용해 한다는 수술 전 계획은 그렇게 정해진 거고 합리적인 결정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아마도 문제의 시작은 처음 복강경 기구를 삽입하는 과정에서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 번의 복강경 수술로 장이 달라붙어 있는 상태에서 복강경을 집어 넣기 위해 최초로 복부에 작은 구멍을 뚫을 때 보통이라면 배 안쪽과 그 아래 장 사이에 어느 정도 공간이 있기 때문에 장을 뚫고 들어가거나 심장 쪽으로 뚫거나 하는 일은 일어날 리가 없겠지만 온통 장이 달라붙어 정상적인 위치에 있지 않았다면 최초로 구멍을 뚫는 기구인 트로카가 배 안으로 들어갈 때 횡경막을 뚫고 심장을 둘러싼 심막도 뚫었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내시경을 넣고 수술이 시작되었을 테니 집도한 의사가 눈으로 보기 시작해서부터 끝날 때까지 심낭이 뚫어지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수 있는 것이지요. 이미 시작 전에 일어나 버린 것이니까요.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 결과 심낭에 0.3cm의 구멍이 나 있었다는데.. 트로카의 직경이 그 정도입니다. 제 추측이 맞다면 수술한 집도의는 수술 전 과정 내내 심낭 천공은 보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래서 이후에 환자 증상이나 X 선 촬영 사진을 보면서도 설마 설마 했을 것입니다. 자기 눈으로 직접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수술을 다 했는데 그쪽은 수술 중에 건드린 적이 없으니 나중에 심장에 물이 차도 어 이거 뭐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장협착 수술 중 장에 구멍이 뚫어진 천공으로 온통 배 안에 염증이 퍼진 것이 생명을 앗아간 근본적인 문제였지만 협착을 수술하는 과정에서 장이 찢어지거나 구멍이 날 수도 있고 수술 과정에서는 문제가 없이 끝났지만 수술 후에 약한 부분이 터질 수도 있으니 그건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 다음 수술 직후부터 환자가 가슴 통증과 고열 그리고 무엇보다 배가 계속 아프다고 했을 때 그 때부터의 전개 과정은.. 처음 인터넷에 관련 기사가 떴을 때 대부분의 의사들은 뭐가 잘못되었는지 대략적으로는 다 알았을 정도로 전형적인 복막염에 의한 패혈증 경로로 안타깝게 흘러간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궁금한 것은 그리고 뭔가 조치가 잘못되었다고 느껴지는 것은.. 수술 보다 수술 이후의 조치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고 하더라도 수술에는 여러 변수가 있고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장유착으로 이미 수술을 받은 적도 있었던 환자에게 복강경으로 또 수술을 하는 것이니 수술 과정에서 장이 손상될 수도 있고 심낭이 손상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걱정하고 의심을 하고 대비를 했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있을 수 있는 후유증이 발생했는데 그 진단을 잘못했고 제대로 처치하지 않았고 환자에게도 상황을 정확히 알리지 않은 것입니다.

 

퇴원 시점에 대한 논란도 있는데 만약 방귀가 나올 때까지 금식하고 기다렸다가 확인 후 퇴원했다면 적어도 장에 구멍이 뚫어진 건 아니라고 확실히 알 수 있었을 것이고 퇴원 후 배가 아프고 열이 난다고 와서 복부 X 선 촬영을 했을 때 배 안에 가스가 차 있고 심장 주변에 허옇게 물이 찼을 때 주의 깊게 봤더라면 위중한 상황이 생겼음을 환자에게 알리고 조기에 대형병원으로 이송해서 고생 하더라도 살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설픈 의사가 아니라 나름 수술 경험도 많고 여러 상황을 많이 겪어본 의사이기 때문에 합리적인 이유로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고 믿고 지체했을 수 있습니다. 복강경 수술을 하면서 배 안에 넣어두었던 CO2 가스가 나중에 배속 윗부분으로 올라올 수 있으니 수술 후 사진에 가스 음영이 나왔을 때도 장천공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심장에 물이찬 것에 대해서도 다른 뭔가를 고민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 부분들에 대해 합리적인 설명 그리고 수술 과정 중에 일어날 수 있는 <과실이라고 할 수 없는 합병증>과 수술 후에 환자 상태가 이상하게 흘러가는데도 제대로 처치가 안된 <발생해서는 안 되는 사고> 간에 명확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정말 의료 과실에 대해서 너무 의사를 몰아세우는 경향이 있고 언론에서도 의료 사고 관련한 보도에 클릭이 많이 몰리니 너무 선정적으로 다루면서 의사들이 위축되고 그런 측면도 있습니다. 과도한 책임에 비해서는 보상이 적다 보니 생명을 다루는 과를 기피하고 우리나라가 곧 제3 세계 의사들을 수입해 국민의 생명을 맡겨야 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이 터지고 전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많은 의사들이 걱정하고 걱정하고 염려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로 이번 일에 대해서는 경찰이나 검찰이 수사로 밝히기 이전에 의사 협회에서 나서서 솔직하고 전문가답게 잘 정리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찬 바람 불고 스산한 날씨입니다. 떠나 보낸 친구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우리 사회에 중요한 획을 긋는 고귀한 희생일 수 있도록 의사 협회에서 움직여주기를 고 신해철 씨 팬의 한 사람으로서 바래 봅니다.